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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 김애란





292. 그때는 언니가 되게 언니처럼 느껴졌는데 이제 저도 서른이네요. 그사이 언니에게도 몇 줄로는 요약할 수 없는 시간들이 지나갔겠죠? 바람이 계절을 거둬가듯 세월이 언니로부터 앗아간 것들이 있을 테죠? 단순히 '기회비용'이라고만 하기엔 아쉽게 놓쳐버려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도. 말해도 어쩔 수 없어 홀로 감당해야 할 비밀과 사연들도요. 그래서 사실 오늘 언니가 8년 동안 임용이 안 됐었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했어요. 8년. 8년이라니. 괄호 속에 갇힌 물음표처럼 칸에 갇혀 조금씩 시들어갔을 언니의 스물넷, 스물다섯, 스물여섯…… 서른하나가 가늠이 안 됐거든요.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속에 생기는 온갖 기대와 암시, 긴장과 비관에 대해서라면 저도 꽤 아는데. 자식 노릇, 애인 노릇 등 온갖 '도리'들을 미뤄오다 잃게 된 관계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닌데. 좁고 캄캄한 칸에서 오답 속에 고개를 묻은 채, 혼자 나이 먹어갔을 언니의 청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중략) 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니까 제가 겪은 모든 일을 거쳐갔겠죠? 어떤 건 극복도 했을까요? 때로는 추억이 되는 것도 있을까요?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는데. 다른 친구들은 무언가 되거나 되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저 혼자만 이도 저도 아닌 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져요. 아니, 어쩌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요.




297. 그런데 언니,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315. 아마, 그래서였을 거에요. 그 애가 잘 있으리라고 확신한 건. 언제 어디서든 그렇게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세상과 '맞짱' 뜨고 있을 거라 믿어버린 건요.




315.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중략) 지금 선 자리가 위태롭고 아찔해도, 징검다리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도, 한 발 한 발 제가 발 디딜 자리가 미사일처럼 커다랗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이 시절을 바르게 건너간 뒤사람들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 좀 늦었어도 잘했지. 사실 나는 이걸 잘한다니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당장 제 앞을 가르는 물의 세기는 가파르고, 돌다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 멀어 눈에 보이지조차 않네요. 그래서 이렇게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오래된 물음표 하나만 응시하고 있어요. 정말 중요한 '돈'과 역시 중요한 '시간'을 헤아리며, 초조해질 때마다, 한 손으로 짚어왔고, 지금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것.

'어찌해야 하나.'

그러면 저항하듯 제 속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요.

'내가, 무얼, 더.'


언니,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찌하면 좋을지 누구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데, 지금 제 주위에 남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318. 언니, 저를 기억해주어 고마워요. 그리고 제게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전 그런 얘기를 들을 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럴 자격이 없는데…… 제가 오늘 언니에게 무얼 받았는지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써요. 언니는 그게 뭔지 이미 알고 있을 테지만. 언니가 준 것과 내가 받은 것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잘 지내요, 언니. 언니가 정말 잘 지내주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 이제니

더 나쁜 쪽으로 - 김사과



5. 우리는 좀더 중요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좀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나빠지지 못했고 밤은 충분히 차갑지 못했으며 말들은 움찔거리며 멈추어 서 있을 뿐이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 - 김금희




33. 너의 허스키를 사랑해, 너의 스키니한 몸을 사랑해, 너의 가벼운 주머니와 식욕 없음을 사랑해, 너의 무기력을 사랑해, 너의 허무를 사랑해, 너의 내일 없음을 사랑해.



42. 필용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얼마쯤 걷다가 또 극장 쪽으로 향했지만 다시 몸을 돌려 종로에서 멀어졌다. 양희야, 양희야, 이제 피시버거는 안 판단다. 양희야, 양희야, 너 되게 멋있어졌다. 양희야, 양희야, 너, 꿈을 이뤘구나, 하는 말들을 떠올리다가 지웠다. 안녕이라는 말도 사랑했니 하는 말도, 구해줘라는 말도 지웠다. 그리고 그렇게 지우고 나니 양희의 대본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하지만 그건 실제일까. 필용은 가로수 밑에 서서 코를 팽하고 풀었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뭔가가 바뀌었을까. 바뀌면 얼마나 바뀔 수 있었을까. 가로수는 잎을 다 떨구고 서서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필용은 오래 울고 난 사람의 아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질문들을 하기에 여기는 너무 한낮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정오가 넘은 지금은 환하고 환해서 감당할 수조차 없이 환한 한낮이었다.



71. 문장과 시와 드라마는 있지만 이름은 없는 세계, 내가 간신히 기억하는 한, 그것이 바로 조중균씨의 세계였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 벨 훅스



45.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에 반대한다. (중략) 우리를 위협하는 적은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이다. 여성이 자신의 성차별주의를 직시하지도 바꿔내지도 못한 채 페미니즘 정치의 기치를 내건다면 페미니즘 운동은 끝내 소멸해버릴 것이다.





167. 가부장제적 남성성은 남자들을 병적으로 자기도취적이게 하고 유치하게 굴게 하고, 단지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주어지는 (어느 정도 상대적인) 특권에 심리적으로 의존하게끔 부추긴다. 많은 남자들이 자기충족적인 핵심 정체성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나 특권이 사라지면 자기 삶이 위협받는다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 운동은 남자들에게 어떻게 자신의 감정을 되찾는지를 가르치고 내면의 잃어버린 소년을 되찾아 영적이고 정신적인 성장을 도모하라고 적극적으로 격려했다. (중략) 미국 대다수 남성들은 자기 정체성이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설령 가부장제에 매달린다고 해도 그것이 문제의 일부라는 사실을 감지하기 시작하고 있다. 일자리가 없고, 일한 만큼 보상도 받지 못하고, 여자들이 더 많은 계급 권력을 쥐는 상황에서 돈 없고 힘없는 남자들은 자기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쉽지 않다. 백인우월주의-자본주의-가부장제는 결코 자신의 약속을 책임지지 못한다.



234. 페미니즘 정치의 정신은 지배를 종식하기 위한 헌신이다. 사랑은 결코 지배와 강압에 기반한 관계에 뿌리내릴 수 없다. 가부장제적 사랑의 개념을 매섭게 비판한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중략) 우리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비전의 맥박은 여전히 근본적이고 필연적인 진실과 공명한다. 즉, 지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페미니즘 사고와 실천은 동반자 관계와 육아를 통한 상호성장과 자아실현의 가치를 강조한다. 누구나 욕구를 존중받고, 누구나 권리는 누리고, 누구든 예속이나 학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관게에 대한 이러한 비전은, 가부장제가 관계의 구조를 지키기 위해 고수하는 모든 것에 반대된다. 우리 여성들은 대부분 아버지나 남자 형제, 또는 이성애자 여성의 경우 연애관계까지 사생활에서 접하는 친밀한 관게에서 남성의 지배를 경험했거나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여성과 남성이 모두 페미니즘 사고와 실천을 받아들일 경우 두 사람의 감정적 행복은 더 깊어질 것이다. 진정한 페미니즘 정치는 언제나 우리를 속박에서 자유로, 사랑이 없는 곳에서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이끈다.
 





해제 - 권김현영

272. 2017년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지나치게 공부를 많이 하고 자기를 계발하는 여성들을 실질적으로 처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보고서의 마지막에는 실력과 경험ㅇ르 갖춘 여성들의 눈이 높아져서 더욱 결혼을 기피하고 있으므로, 국가에서 "비밀리에" 여성들의 눈을 낮출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자는 제안으로 끝난다. 이 모든 것이 농담이 아닌 시대에, 페미니즘은 어떤 언어와 전략을 가져야 할까. 개인적으로 실력을 쌓고, 준비를 하는 것으로는 공정한 대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삶의 다음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여성들을 더 차별할 근거가 될 뿐이다. 혹자는 이 각자도생의 시대에 페미니즘이라는 '빨간 약'을 먹고 나면 사는 게 더 힘들고 불편해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시대에 특히 '예민함'이라는 감각이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민하다는 것은 상처를 잘 받는다거나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예민함은 이상한 상황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민하다는 건 주어진 질서의 오류와 모순을 눈치챌 정도로 지적이며 동시에 강인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삶이라는 점에서 예민함이라는 감각은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에의 배려 혹은 통치되지 않으려는 의지로 이어질 수 있다. 예민함은 약자에게 강요되는 부정의한 제약을 거부하는 감각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때로 권력이 될 수 있다. 예민한 사람은 약자가 아니라 강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손에 쥔 사람이다. 사실 진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 착취와 억압에 저항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예민할 겨를이 없다. 예민함이라는 감각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하게 되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스스로 점점 무력해진다고 느끼는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중략) 페미니즘은 약자를 '위한' 정치학이지, 약자가 '되자'는 정치학은 아니기 때문이다.


274. 여성이 처해 있는 사회적 상황은 언제나 변화하고, 그에 따른 차별의 양상도 달라진다. 또한 여성들은 모든 계급과 지역에 존재하고, 모든 연령을 경험하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적 파트너를 선택하고 가족을 구성한다. 여성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언제나 변화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있다. 실제로 페미니즘은 그 어떤 사상보다 활발하게 내부를 비판하고 논쟁해왔다.


275.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희생자이다. 과거와 현재는 사랑으로 향한 길에 너무나 많은 장애물을 놓았다. 우리는 평화로울 때조차도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즐길 수 없다." 여성을 하나의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묶어놓고 그 규범으로부터 벗어난 이들을 단죄하는 문화에서는, 우리는 결코 우리의 차이를 즐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 비판에 열려 있고, 차이를 축복할 수 있게 된다면, (나 자신으로서 자유롭게 살 권리를) 억압받은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게 페미니즘이 매번 갱신될 수만 있다면, 그래서 페미니즘이 모두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11.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14.
그해 너의 앞에 서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내 입속에 내가 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15.
어느 커다란 무덤 앞에서
당신이 내 손바닥을 펴더니
손끝을 세워 몇 개의 글자를 적어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 손바닥을 접어주었다.
나는 무엇이 적힌 줄도 모르면서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



49.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며 맺는 관계에도 어떤 정량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 정량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나는 한번에 많은 인연을 지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51.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만나게 되면 외롭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고독은 내가 나를 만나야 겨우 사라지는 것이겠지. 그러다 다시 금세 고독해지기도 하면서."



70.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

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



71.
더운 숨이 터져나왔다. 지난밤에는 울음 몇몇이 끝까지 차오르지도 못하고 낮은 곳으로 흘러내린 듯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것은 우리의 환상인지도 몰랐으나 실제로 옥상 문을 열면 창백한 하늘이 여기저기 매달려 있었다.



88.
사랑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다. 연애를 처음 시작한 날을 기억하고 백 일, 1주년, 천 일 등을 기념할 수는 있지만 사랑이 처음 시작된 날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연애는 상대에 대한 사람의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자라나 있을 때 시작되는 것이므로 연애의 시작은 사랑의 시작보다 늘 한발 늦다.
이별의 경우라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사랑의 감정이 모두 끝났는데도 이별하지 못하고 연애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고 이와 반대로 사랑이 끝나지 않은 채 이별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사랑의 시작과 끝에는 어떤 징후들이 감지되는데 그것은 소설 속 문장처럼 "지극히 하찮은, 혹은 시시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내 경우에는 그것이 소리였다. 터뜨리는 웃음이나 나지막이 흥얼거리는 상대의 콧노래, 심지어는 마른기침 소리까지도 살갑게 느껴질 때 나는 내가 사랑에 빠졌음을 알아챈다. 반대로 상대가 가진 특유의 말투나 부르는 노래, 음식물을 씹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때 나는 이 사랑이 곧 끝을 맞이할 것이라 직감한다.


사랑의 세계에서는 소리가 들리는 방식이 다르다. 저녁이 가고 어둠이 밀려오는 속도가 다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이 다르고 새벽 창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서늘함이 다르다. 분명 늘 혼자 먹던 음식인데도 다시 그 음식을 혼자 먹어야 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다. 깊은 잠에 빠진 상대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연한 빛이 맴돈다면 잠에서 깬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어느새 짙음으로 가득하다.


상대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그 누군가'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 혹은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그 사랑이 과거 '그 누군가'가 받았던 것이라거나, 훗날 다른 '그 누군가'가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로 사랑을 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은 곧잘 상한다.
하지만 생각을 한번 더 깊이 가져가보면 그리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대상은 '그 누군가'가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은 감정을 '사랑'이라 부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나에게 유일해지고 싶은 감정은 '사랑'이라는 말이 아니라면 부를 방법이 없다.



102.
사월, 서풍이 들면 매화나무의 흰 꽃들은 얼마쯤 바람을 타고 날아가 낯선 이의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이런 일은 슬프지 않게 됐습니다.



102.
사람에게 미움받고.
시간에게 용서받았던.




108.
그해 여름 나는 남도의 어느 소읍에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목표했던 분량만큼 글을 쓰기 전까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타지에 왔다고 해서 평소 안 써지던 글이 갑자기 잘 써지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그곳에서 글을 쓰는 데 골몰하는 대신 낯선 환경을 경계하고 그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다. 또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것들 가운데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내고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애써 마음을 피해 다니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나는 그곳에서 한끼에 반찬을 아홉 가지나 주는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 식당과 그 식당의 할머니를 좋아했다. 사이다 버튼을 눌러도 콜라가 나오는 느티나무 아래 음료자판기를 좋아했고 바로 옆 2백 원짜리 일반 커피와 3백 원짜리 고급 커피의 맛이 전혀 다르지 않은 커피자판기도 좋아했다.
반면 그 식당에서 며칠씩 외상을 하고 값을 치를 때마다 꼭 2,3천 원씩 돈을 헐어 내는 한 중년의 남자를 싫어했다. 하루종일 흰 개를 묶어두면서도 물그릇을 자주 마르게 두는 느티나무 옆 카센터 주인을 싫어했다. 그는 주로 건물 안에 있다가 카센터로 들어오는 차를 보고 흰 개가 짖으면 밖으로 나오곤 했는데 반려동물에 대한 의식은 고사하고 동업자에 대한 예의도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가장 자주 한 일은 걷는 것이었다. 밥을 먹고 걸을 때도 있었고 끼니를 거르고 걸을 때도 있었다. 볕을 맞으며 걸었고 비가 오는 날에도 걸었다. 걷고 있는 시간만큼은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나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 내가 스스로 세운 목표에 대한 중압감 같은 감정들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어 좋았다. 대신 발이 아프다, 목이 마르다, 버드나무는 수피의 색이 유독 진하다, 같은 직관적인 생각들을 자주 했고 오래전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허언들을 되새기거나 보고 싶은 사람을 두엇쯤 떠올려보기도 했다.
여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던 날, 나는 처음 각오했던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쓰기는커녕 몇 개의 단상만을 메모해둔 채 별 소득 없이 서울로 향해야 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낯설기만 했던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이 더없이 친숙해졌다는 것, 얼굴과 목이 많이 탔다는 것, 그리고 평소 지겹고 답답하기만 했던 원래 내 삶의 일상과 거처가 조금 그리워졌다는 사실이었다.
일상의 공간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 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111.
누구인가를 만나고 사랑하다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엇인가 모르는 구석이 생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의 세계 속에서 자라는 상대가 점점 울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 이것은 내가 상대의 세계로 더 깊이 걸어들어왔다는 뜻이다.
단칸방, 투룸, 반지하, 옥탑 혹은 몇 평이라고 말하며 우리들의 마음을 더없이 비좁게 만드는 현실 세계의 공간 셈법과 달리 사랑의 세계에서 공간은 늘 광장처럼 드넓다.
이 광장에서 우리가 만나고 길을 잃고 다시 만나고 헤어진다.




128.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 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산의 영정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옆 집의 나르시시스트 - 제프리 클루거



41. 여러 가지 의미에서 아기들은 심지어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에게 이것저거 시키게 된다. 출산과 관련된 그 모든 감동과 낭만, 마법과도 같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예비 부모가 그토록 축하하는 것은 사실 기생체와 숙주의 관계에 불과하다. 수정이 되는 순간부터 사실상 이질적인 생명체가 엄마의 자궁을 차지하고는 그곳을 엄마의 몸 전체를 통제하기 위한 일종의 교두보로 삼는다. 엄마는 이 관계에서 물리적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아기는 생명 그 자체를 얻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노골적인 속임수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정이 되지 않은 난자는 온전히 엄마의 몸에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아군에 해당하며 면역학적으로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지만, 난자를 찾아 헤매는 정자는 침입자나 다름 없다. (중략) 수정이 일어난 직후에 난자는 아빠의 DNA를 숨기고 엄마의 유전 물질만 보여주는 보호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중략) 한동안은 이 전략이 유효하지만 일단 배아가 자궁벽에 착상하면 이 보호 단백질만으로는 계속 자라나는 이질적인 조직을 전부 가릴 수 없다. 따라서 태반이 개입하여 태아가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돕는다.
엄마와 아기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임시 기관인 태반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T 세포를 죽여 엄마의 면역 체계를 더욱 강력하게 밀어내는 역할을 하는 융모성 생식선 자극 호르몬을 신속하게 분비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 호르몬은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키는데, 이 프로게스테론은 아기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모세혈관이 태반에서 자궁 쪽으로 자라나도록 자극하고 반대로 엄마의 모세혈관은 자궁벽 안쪽으로 자라도록 하여 태아가 엄마의 몸속에 보다 단단히 뿌리를 박고 에너지와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한다. 다른 호르몬들도 분비되어 자궁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의 직경을 확장하고 혈액의 흐름을 조절하는 엄마의 능력을 억제하는데, 그 결과 엄마는 혈압도 원활하게 조절하지 못한다.
동시에 태반은 자라나는 태아에게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 엄마의 혈당치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태반성 락토겐이라는 호르몬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엄마의 몸은 이에 대응하여 인슐린을 더욱 많이 분비하고, 태아는 더 많은 당을 요구하여 혈당치를 더욱 끌어올린다. 또한 태반에서 쏟아져나온 다른 단백질들이 혈류를 따라 온몸을 돌면서 엄마의 뼈에서 칼슘을 녹여낸 다음 자궁으로 가져오면, 태아는 그 칼슘을 사용하여 자신의 골격을 만든다.
이러한 모든 변화의 결과, 임신 전에는 더없이 건강했던 엄마도 임신 말기가 되면 고혈압, 당뇨병, 골다공증 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골반은 자라나는 태아 때문에 벌어지고, 방광이 납작해지고 내장은 압박을 받는데다 자꾸 커지는 자궁이 들어설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장기들의 위치가 바뀐다. 가슴에는 울혈이 생기고 복부는 부풀어오른다. 이 모든 과정의 대단원이자 진짜 고통스러운 진통과 출산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다. 엄마는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엄마의 몸이 자진해서 포기하지 않은 것은 태아가 그냥 빼앗아버린다. 이것이 의도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은 아니지만 그만큼 이기적인 것도 사실이며,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만큼 배려없는 행동이기도 하다. 물론 태아는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가 엄마의 몸을 장악하고 성장하는 방식에서 생존을 위한 일종의 탐욕을 느끼지 않기는 어려우며, 심지어 과학자들도 어느 정도 이 견해를 인정하고 있다.


44. 예를 들어 진화생물학자인 데이비드 헤이그는 태반을 "오직 태아의 생명 유지와 보호를 위해서만 존재하며 모체는 안중에도 없는 무자비한 기생 기관"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53. 일반적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공감하는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았으며, 도움을 주는 방식도 그냥 바라보기부터 말로 위로하기, 토닥이며 위로하기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복잡해졌다. 그러나 공감 능력이 반드시 일관되게 나이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변수는 바로 아이의 언어 구사 능력이었다.
실험이 시작되기 전에 실시한 언어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아기들은 공감적인 반응을 보일 확률이 높았다. 일반적으로 언어 능력이나 공감적인 반응 모두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했는데, 딸이 아들보다 말을 빨리 습득하고 더 많은 동정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부모들에게는 그다지 놀라운 결과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말은 공감을 낳는다는 더욱 보편적인 원칙은 실험에 참가한 남녀 아기 모두에게 적용되었다.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감정을 모방하는 방식의 하나입니다." 바넷의 설명이다.


123. 나르시시스트는 뭔가를 포기하면 철저한 공허감을 느끼기 때문에 포기하기보다 속임수를 쓰는 쪽을 택하고, 일단 악순환이 시작되면 좀처럼 멈추기 힘들다. 실제로 나르시시스트들은 이 규칙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져 행동하며, 실수를 했는데도 어떻게든 살아남은 경우에는 더욱 대담해져서 더 큰 속임수를 쓰게 된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 존 그린




40. 그가 책을 내밀었다. 책 제목은 「새벽의 대가」였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책을 받았다. 우리의 손이 책을 건네는 동안 살짝 엉켰고, 그가 내 손을 잡았다.
"차갑네."
그가 내 창백한 손목에 손가락 하나를 얹은 채 말했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졌을 때만큼 차갑진 않아."
"네가 의학용어를 말하는 게 정말 좋더라."
그는 일어서서 나를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고, 계단에 도착할 때까지 손을 놓아 주지 않았다.



166. "어떤 관광객들은 암스테르담이 죄악의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여긴 자유의 도시에요. 그리고 자유가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악을 찾죠."




173.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금방 익숙해지니까."
"난 아직까지 너한테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174.
우리는 바다의 방에서 머무릅니다.
붉은색과 갈색의 해초 화환을 쓴 인어들 옆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우리를 깨울 때까지, 그리고 우리는 익사합니다.




184. "(전략) 캐롤린은 항상 기분이 변덕스럽고 불행했지만, 난 그게 좋았어. 그 애가 세상에서 싫어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으로 나를 골라 준 것 같은 기분이었어. 그래서 우린 항상 붙어 지내며 모든 사람들을 욕했지.(후략)"




228. "난 싸울 거야. 널 위해서 싸울 거야. 나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 헤이즐 그레이스. 난 괜찮아. 난 살아남아서 널 오랫동안 짜증나게 하는 방법을 찾을 거야."




229. "나도 너한테 똑같이 했을지도 몰라."
"아니, 넌 그러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우리 모두가 너처럼 근사할 순 없으니까."




236. "내가 뭘 믿는지는 모르겠단다, 헤이즐.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이 뭘 믿는지 아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가 않더구나."




249. "가끔 그 그네 세트를 계속 갖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
"우리 집 뒤뜰에 있던 거?"
"응, 향수병이 아주 심해서 한 번 엉덩이를 대 본 적도 없는 그네까지 그립다니까."
"향수병은 암의 부작용이지."
내가 말했다.
"아니야. 향수병은 죽음의 부작용이야."
그가 대답했다. 우리 위로 바람이 불어오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우리 피부 위에서 흔들거렸다. 거스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멋진 삶이야, 헤이즐 그레이스."







간격의 미 - 백가희





14. 연가

사랑해요

이 소절을 외우기 위해 얼마나 숱한 밤을 지새웠는가

사랑스럽고 행복한 일이 가득한 내 젊은 봄에
그대 하나로 행복하다고 말하기 위해

나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가




76. 우리는 우리였음 좋겠다

흘러가는 모든 것들에게서 변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중에 꼭 하나는 예외가 있더라

그 예외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였음 좋겠다




99. 모래성

네가 내게 한 단어씩 몰아칠 때면
나는 몇 번이나 내 세상의 반을 잃었다

엮고 쌓은 글을 내려놓은 종국에는
네 생이 나를 덮쳤다




100. 돋보기

내게로 오는 행복은 너의 몫이었다
황홀도 네 것이었고
즐거움도 기쁨도 내가 알기 전에
너의 입에 들이밀었다

내게로 오는 한 톨의 빛이라도
여과 없이 너에게로 갔고

몸을 관통하는 뜨거움을 알고도
빛을 모아 네게만 줬다

내 손에는 남은 게 없다

연약한 나의 우주여
너는 이제 어디로 피우겠는가




109. 문득

문득 생각이 나서
내 안의 삶을 들여다보니
온통 너 투성이였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에게 속이 난자당했다

그래, 단언컨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생을 잃어가는 일이다




113. 어떤 사랑의 안부

넌 가끔
내 모든 것을 쥔 것 마냥 구는데
그렇다면 한숨도 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무거운 숨에
내 생이 흔들린다




125. 그 애

너는 무책임해서 모른다
낭창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뽈록 솟은 광대뼈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너의 무책임함에 내가 얼마나 애닳는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네가 계속 무책임했으면 좋겠다




127. 결심

너를 사랑한 이후로 결심한 것이 딱 하나 있다
결단코 어느 하루도 시리게 하지 않겠다

우리의 겨울은 따뜻할 것이다




145. 나를 찌른 고독에게

나를 찌른 고독에게

칼 손잡이를 주었다
자 잡아
내가 다 아플게

울지 마, 나의 고독




155. 짝사랑 꽃게

나는 너의 곁으로 가고 싶어 옆으로 걸었다
네가 눈치 채지 못하게끔 조금씩 걸었다
그러다 네 눈물에
다시 저만치 밀려났다가도
살 수 있는 곳은 저기가 전부라고
목만 내밀며 걸었다

그게 참 내 일생이었고
언제 짓밟힐지 모르는 운명이었다




168.
가을이 가고
내리는 눈에

그제야
나는 너를 사랑했었음을 알아챈다




172. 너의 무게

지난 겨울 내내 너는 함박눈처럼 무겁게도 내렸다. 이미 다 지난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네가 너무도 무겁게 내려앉아 내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꺾인 것이라고, 있었던 곳이 비워지니 그곳만 깨끗해서 시선이 가는 것이라고. 오래된 수식을 푼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한 켠에 덩그러이 앉아 술을 마셨다. 다 토해내고 나니 글을 쓰기도 수월했다. 아직 난 너를 안을 때의 공기 부피를 기억한다. 내 마음에서 가장 깨끗한 자리를 보면서 네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찬바람은 갈 길이 바빴고, 바야흐로 겨울이다.












당신이 빛이라면 - 백가희






사랑해. 난 네 앞에서 가장 순수했고, 자주 뜨거웠고, 너무 들떴고, 많이 무너졌어. 사막에 핀 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쏟아 부어서라도 너를 피워내고 싶었고, 네가 날아갈까 앞에선 숨을 멈추는 것따위 일도 아니었다고.




"우리의 시간이 전부 꿈이진 않을까?" 당신은 자주 불안해했다.
행복은 가지지 못하면 욕심났지만 갖고 있으면 두려운 것이기도 했다. 기쁨의 전원이 꺼지는 것에 대한 공포.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에 더욱 확신이 없었다. 일어나면 나약한 환희가 사라졌을까. 무서움에 잠긴 당신을 위해 밤마다 귓가에 속삭였다.
걱정마.
현실이 아니더라도 사랑할게.




나는 너의 찰나를 모르지만
너의 찬란을 알았다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이가 재미를 위해 던지를 물 수제비가
물에겐 어떤 파동인지 몰라서
너도 그렇게 해사하게 웃는 거냐고




네가 날 보고 싶어 하면 좋겠어. 어두운 하늘에 조명이라곤 달밖에 없는 고요함 속에서 내 얼굴을 떠올렸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없는 골목길에서 날 그리워했음 좋겠어. 내가 뭘 하는지 생각하면 좋겠어.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내 손을 잡고 싶어 하면 좋겠어. 길을 걷다가도 버스를 타다가도 내 빈자리를 느끼면 좋겠어. 무엇보다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네가, 그대는, 당신만.




시작을 찬미하는 글이 많았다. 우습게도 '시작'을 운운하는 문장들은 그의 짝궁인 '끝'을 책임져주지 않았다. 너도 그랬다. 사랑을 시작했다고 대차게 말하더니 쉽게 놓았다. '시작이 반이다.' 네가 책임진 건 시작이라는 명사 하나가 전부였다.
나는 시작이 아닌 반에 내 생을 걸었고 생의 반을 잃었다.




상극이어야 존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너는 태초부터 나의 반대여야만 했던 사람처럼 머물렀다.




똑같이 원망스러운 하루들임에도 과거는 조금 더 다정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자주 돌아가고 싶고, 오래 미련이 남는다. 내가 있으나 내가 아닌 것만 같은 예전의 시간들에.




"우리가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넌 뭐할래?"
"너한테 계속 말할 거야. 나를 이해하라고. 내 사랑이 내팽개쳐지지 않게."




네 개의 계절이 네게로 통하고
내 취향은 여전히 너다




너는 나의 사진으로 남지 말았어야 했다




휘청이지 말아라 나의 그대는
비틀대는 발걸음에 다져놓은 삶이 무너지는 것은
더 많이 사랑한 내 책임 아니겠는가







내가 너 참 많이 좋아했어. 네가 빗소릴를 좋아하길래 침대 안쪽에 너를 재우고, 창문을 살짝 열고 방충망을 뚫고 오는 빗물을 맞으며 네게 손차양을 쳐줄 정도로. 더위를 많이 타서 오래된 선풍기를 틀고, 창을 반쯤 열고, 커튼 끝자락이 얼굴을 스쳐도 간지러운 거 다 참을 정도로. 전날 밤 내가 꾼 꿈의 주연이 너여서, 빗방울 하나도 너같이 사랑스럽다 일컬을 정도로.




삶은 언제나 비탈이었다. 뛰면 넘어질 것 같고, 걸으면 느린 것만 같고, 올라가는 길은 숨이 차고, 내려가는 길은 미치도록 불안한. 신은 감당할 수 있는 슬픔만 주신다더니 그것도 옛말이었다. 마치 숙명인 양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슬픔 따윈 없다고 말하듯이 힘든 일은 겹쳐서 우르르 넘어지곤 했다. 실패의 연속.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 뻔할 뻔 자의 위로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한 번쯤은 속아 넘어가도 좋을 만한 말이었으나 나는 그것을 믿고 나아갈 만큼의 배포가 없던 사람이었다. 실패는 실패로 끝, 그게 다인 애였다.
그날도 오늘처럼 일교차가 심했다. 낮에는 분명 거리낌 없이 골목을 누빌 수 있었는데 언제라도 네 곁에 도착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가지게 했던 기온이고, 바람의 체온이었으나 밤이 되자 옷깃을 여미고 오들오들 떨면서 이렇게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거란 마음마저 들었다. 그것은 분명 너를 향한 내 열망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하면 바라는 게 점점 많아진다더니. 내 꼴이 딱 그 꼴이었다. 이 정도면 됐지, 이거면 충분하지 하면서 애써 달래도 눈빛이나 손길뿐만이 아닌 네가 나를 사랑으로 대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욕심이라고 해도 좋았다. 언제까지 인내하고, 보상을 바라지 않아야 하는지. 짝사랑은 제동을 걸어야 할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심장의 일도 모호해졌다. 이 미세한 박동이 살고자 뛰는 것인지 아니면 내 앞의 너를 위해 뛰는 것인지. 웃을 때마다 팽팽하게 솟아오른 네 광대뼈를, 활짝 벌어지는 입술을, 선홍빛으로 물든 볼을, 변함없이 다정한 눈길을, 하릴없이 묘사만 가득한 글을 쓰곤 했다. 존재만으로 칭송받아야 할 것들이니까. 따로 보면 누구나 가질 법한 것인데 같이 보면 색 조화가 뛰어난 유화처럼 그려져 있다. 지나가는 계절에 비유하기도 어렵고, 한밤에 잘 머물다가는 달빛에 빛대기도 어렵다. 조금 더 다채롭고, 조금 더 환하다.
네가 조금만 덜 따스했다면 사랑하지 않았을까? 적당히 다정하면, 적당히 따스했다면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곰곰 생각해봐도 그건 아귀가 맞지 않는다. 나는 네가 무생물이어도 사랑했고, 사물이어도 사랑했을 것이다. 너라고 증명이 된다면 말이다.
창을 활짝 열어놓고 잠이 들었다. 네게 보내지 못한 메세지들이 수두룩했지만 그것은 끝끝내 그곳에 머무르다 네 발끝에도 닿지 못하고 휴지통을 던져질 것을 알기에 참 쉽게도 체념했다. 매일의 마무리가 네 생각이나 꿈에도 네가 나왔다. 지나치게 생생한 목소리로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깨고 나서도 내가 꿈을 꾼 것인지, 잠깐 다른 차원의 세계를 살다 온 것인지 구별이 되질 않았다. 차라라ㅣ 내가 살 수 없는 현실이라도 현실이었으면 했는데…. 알람 소리가 원망스러워져 핸드폰을 들었다. 다 끄려던 찰나에 우르르 메세지가 쏟아졌다. 건네받은 말들은 하나같이 너의 연애 소식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주어졌고, 미치돍 무거웠다. 언제라도 삶을 내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꿈은 신의 마지막 선물인 듯했다. 너에게 감당하지 못할 슬픔을 줄 것이라는 예고 같기도 했고 견디라는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축하해.
사실 축하는 못 하겠다. 내가 만약 그날 상쾌한 바람을 다 맞으며 낮부터 달려가서 네게 고백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꿈따위 꾸지 않고 실제로 일어날 수 있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네게 덜 바랐더라면 어땠을까…. 후회들만 줄줄 늘이고 있어 봤자, 너의 사랑은 시작되고 있었다. 내가 주체가 되지 못한 채로. 독백으로 남은 고백의 메시지들을 전부 지웠다. 타인의 네가 된 너를 사랑할 용기가 도저히 생기지 않았다. 전날 밤과 달리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울기 좋은 날씨였다.
일교차가 심한 밤이면 그날 생각에 허우적거렸다. 너는 아직도 다른 이와 네 사랑을 적어 내려가고 나는 여기서 지난날의 후회만 풀어놓고 있다. 술집에서 늘어놓는 무용담처럼. 내가 이렇게 멍청한 인간이라는 것을 애써서 증명하고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어서 너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어쩔 수 없도록 너를 사랑해서 일생을 네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낮의 가벼움의 될 것이라고, 첫사랑을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고, 내 첫사랑은 짝사랑했던 네가 아닌 서로 사랑을 했던 존재라고 타협했던 순간들이 내 발버둥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념할 때가 온 것 같다. 꿈에서 받은 네 고백 하나에 마음 다해 시큰하고, 꿈이라는 걸 원망하고, 현실과 구분없이 꿈 속의 너를 그리워할 정도라면. 내가 했던 처음의 사랑은 네가 맞는구나. 나의 첫사랑은 실패였구나. 실패로 끝난 내 사랑. 이제 그 말에 반박할 수 없다.




네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있고, 너여서 되는 것들도 있다. 의미는 크게 차이 없다. 이 여름은 네가 아니면 안 된다. 이 더위는 너여서 되는 것이다. 내가 아니면 사랑하지 못하고 너라서 이해할 수 있는.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는 당신의 하루를 상상했다.
오랜 불면이었다.

불꽃을 사랑하기 위해
내 불씨를 꺼야만 했다.

당신은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라며 머물러 있지만
거뭇한 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세상 빛의 전부였다.




비가 올 때마다 너와 헤어졌다.
내 기억 속에서 네 장마는 거기서 끝이지만 내 장마는 다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