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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레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Rebecca Solnit

 

 

 

 

 

01)
15p. 남자들은 자꾸 나를, 그리고 다른 여자들은 가르치려 든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든 모르든. 어떤 남자들은 그렇다.
(중략) 이런 현상은 길거리 성희롱과 마찬가지로 젊은 여자들에게 이 세상은 당신들의 것이 아님을 넌지시 암시함으로써 여자들을 침묵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게 되는 데 비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확신을 키운다.



02)
19p. 폭력은 타인을 침묵시키고, 타인의 목소리와 신뢰성을 부정하고, 내게 타인이 존재할 권리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한 방법이다. 미국에서는 매일 약 세명의 여자가 배우자나 옛 배우자에게 살해당한다. 미국에서 임산부의 주요한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것이다. 강간, 데이트 강간, 부부 강간, 가정폭력, 직장 내 성희롱을 법적 범죄로 규정하려고 애써온 페미니즘의 투쟁에서 핵심 과제는 우선 여성을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다.



03)
21p. 남자들은 아직도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그리고 내가 알고 그들은 모르는 일에 대해서 내게 잘못된 설명을 늘어 놓은 데 대해 사과한 남자는 아직까지 한명도 없었다.



04)
23p. 그러나 나를 가르치려 드는 남자들은, 수태를 연상시키는 음흉한 비유라 할 만한 관점으로, 나를 자신들의 지혜와 지식으로 채워야 할 빈 그릇으로 본다.



05)
31p. 여성도 생명권, 자유권, 문화와 정치에 관여할 권리를 지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려는 싸움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이 싸움은 가끔은 퍽 암울하다. 내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쓰면서 스스로도 놀란 점은, 처음에는 재미난 일화로 시작한 글이 결국에는 강간과 살인을 이야기하면서 끝났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사소한 괴로움, 폭력으로 강요된 침묵, 그리고 폭력에 의한 죽음이 모두 하나로 이어진 연속선상의 현상들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가 여성 혐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더 잘 이해하려면 힘의 오용을 총체적으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가정폭력을 강간, 살인, 성희롱, 협박과 별개의 문제로 취급하지 말아야 하고, 온라인과 가정과 직장과 거리를 전부 아울러야 한다. 그렇게 전체를 보아야만 패턴이 뚜렷해진다.

 

 

 

06)

39p. 미국에서 강간은 6.2분마다 한건씩 신고되지만 총 발생 건수는 그 다섯배는 되리라고 추측된다. 그 말은 미국에서 거의 1분마다 한건씩 강간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 사건들의 피해자들을 다 더하면 수천만명이 된다. 여러분이 아는 여자들 중에서 적잖은 비율이 그런 생존자들이다.

(중략) 폭력의 유행병은 늘 젠더가 아닌 다른 것으로 설명된다. 모든 설명들 중에 가장 광범위한 설명력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요인을 쏙 뺀 다른 요인들로만.

 

 

 

07)

45p. 그 남자는 자신이 고른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권리도 자유도 없지만 자신에게는 그녀를 통제하고 처벌할 권리가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폭력은 무엇보다도 일단 권위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폭력은 내게 상대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살인은 그런 권위주의의 극단적 형태다. 살인자는 당신이 죽을지 살지 결정할 권리는 자신에게 있다고 살인을 통해 단언하는 셈이다.

(중략) 남자는 욕망과 그 욕망이 퇴짜 맞을지도 모른다는 노여운 전망을 함께 품고서 여자에게 접근한다. 분노와 욕망은 늘 함께 존재하며, 두가지가 마구 두ㅟ엉켜 한덩어리가 된 상태에서는 언제든 에로스가 타나토스로, 사랑이 죽음으로 바뀔지 모르는 위험이 존재한다. 가끔은 정말 말 그대로 된다.

이것은 통제의 체계다.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살인에서 감히 그와 헤어지려고 한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그렇게 많은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보니 수많은 여성이 그 체계에 갇힌다. 누군가는 1월 7일에 텐더로인에서 여자를 공격한 남자나 1월 5일에 우리 동네에서 잔인한 강간을 시도한 미수범이나 1월 12일에 역시 이곳에서 강간을 저지른 남자나 1월 6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여자친구가 자기 빨래를 안 해준다는 이유로 그녀의 몸에 불을 붙인 남자나 2011년 말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달리 폭력적인 강간을 여러건 저지른 댓가로 얼마 전에 370년 형을 선고받은 남자 같은 사람들은 다들 사회의 주변부 인간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부유하고 유명한 특권층 남자들도 그런 짓을 저지른다.

(중략) "이게 무슨 사랑이에요?" 라고 물었던 티나 터너의 전 남편 아이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래요, 나는 아내를 때렸습니다. 하지만 보통 남자들이 자기 아내를 때리는 것보다 더 많이 때리진 않았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9초마다 한번씩 여자가 구타당한다. 확실히 짚어두는데, 9분이 아니라 9초다. 배우자의 폭행은 미국 여성의 부상원인 중 첫번째다. 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매년 발생하는 그런 부상자 200만명 가운데 50만명 이상은 의료 처치를 받아야 하고 145,000명 가량은 입원해야 한다. 사후에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여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겠다. 미국 임신부의 사망원인 중 수위에 꼽히는 것 또한 배우자 폭행이다.

강간을 비롯한 폭력적인 행동들, 극단적으로는 살인에까지 이르며 폭력을 쓰겠다는 위협까지 포함한 이 모든 행동은 일부 남자들이 일부 여자들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펼치는 방어막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런 폭력이 두려워 스스로를 제약하며, 그러다보면 자신도 익숙해져서 그런 상황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중략) 대학은 여학생들에게 공격자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 집중할 뿐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에게 공격자가 되지 말라고 이르는 일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데, 여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전혀 없다. (나쁜 이유는 아주 많다.)

(중략) 공적 영역, 사적 영역, 온라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 정치체계와 사법체계에도 박혀 있다. 그 체계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우리를 위해 싸우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가정폭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성희롱과 스토킹도, 데이트 강간도,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도, 부부 강간도 인정하지 않았다. 요즘도 강간에 대해서는 강간범이 아니라 피해자를 단죄하려는 경우가 많다. 마치 완벽한 처녀만이 성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듯이, 또는 완벽한 처녀의 말만 믿을 수 있다는 듯이.

 

 

 

08)

125p. 빈틈을 메운다는 것은 우리가 완전히 알지는 못하는 어떤 진실을 완전히 안다고 착각하는 어떤 거짓으로 바꾸는 일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다 안다고 착각할 때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보다 사실 더 모른다.

 

 

 

09)

129p. 그녀ㅡ손택ㅡ는 앎이 감정을 일깨우기도 하지만 마비시키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가 그 모순을 해소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우리에게 계속 사진을 봐도 좋다고 허락하고, 사진 속 피사체들에게는 그들이 겪는 경험의 불가지성을 타인들로부터 인정받을 권리를 허락한다. 그리고 스스로도 인정한다. 우리가 비록 완전히 헤아리진 못해도 여전히 마음을 쓸 수 있다는 것을.

 

 

 

10)

156p. 히스테리라는 단어는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감정적으로 격한 상태를 뜻하는 그 현상이 몸속을 돌아다니는 자궁 때문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상 남자들은 그 진단에서 면제되는 셈이었다.

 

 

 

11)

166p. 여자가 남자의 비행에 관해서 뭔가 불편한 말을 할라치면, 사람들은 으레 그녀를 망상에 빠진 인간, 사악한 음모론자, 병적인 거짓말쟁이, 그저 재미일 뿐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징징대는 인간, 혹은 그 모두에 해당하는 인간으로 묘사한다. 지나치게 사나운 이런 반응들은 프로이트가 말했던 망가진 주전자 농담을 상기시킨다. 어떤 남자의 이웃이 남자에게 빌려간 주전자를 망가뜨려서 돌려주면 어떡하느냐고 책망하자, 남자는 처음에는 망가뜨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가, 다음에는 빌릴 때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고 대답했다가, 나중에는 아예 자신은 빌린 적조차 없다고 대답했다. 여자가 남자를 고발하고 그 남자와 남자의 옹호자들이 저런 식으로 항변할 때, 여자는 망가진 주전자가 된다.

 

 

 

12)

182p. #여자들은다겪는다(YesAllWomen) (중략) 그 문구는 여자들이 직면한 지옥과 공포를 묘사한 말이었으며, 특히 여자들이 억압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남자들이 상투적으로 보이는 반응, 즉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진 않아'라는 반응을 비판하는 말이었다.

일부 남자들은 솔직히 "나는 안 그런데" 라고 말하고 싶어서거나 아니면, 현실의 시체나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의 범인을 논하는 문제로부터 방관자 남성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문제로 대화의 초점을 돌리기 위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 한 여성은 격분해서 내게 말했다. "남자들은 대체 뭘 바라는 거에요, 여자를 때리거나 강간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고 상으로 과자라도 받고 싶은 거에요?" 여자들은 늘 강간과 살해를 두려워하면서 산다. 때로는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남자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제니 추라는 여성은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13)

225p. 1986년에 작가 마리 시어가 말했듯이, 페미니즘은 "여자도 사람이라는 급진적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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